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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10, 화

1. 어디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한 걸까? 이곳에서 나의 인간관계란 것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의 상황으로 와 버렸다.

2. 아마 첫 단추부터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제대로 내무반장을 하게된 날, 그러니까 내 마지막 선임이 제대하던 날 바로 그날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에 나는 출동을 나가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고 아침에는 전역하는 선임 배웅하느라 한 시도 쉬지 못했다. 그렇게 점심까지 같이 먹고 선임을 떠나보내니까 얼핏 2~3시가 되었던 것 같다. 난 전날밤에 못잔 잠을 좀 자려고 내무실에 누웠다. 그때 바로 그가 들어왔고 나는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근무시간에 누워있다고.

사실 그 전에 그사람이 어디 청소좀 해 놓으라고 했던 차였다. 그런데 내 후임은 출동을 나간 상태였고 청소를 할 인원은 나 혼자였다. 혼자서는 할 엄두가 나지 않아 후임이 출동을 갔다 오면 같이 하려고 했다. 더군다나 난 한 숨도 자지 못해서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잠깐 눈 좀 붙이려고 누웠다. 딱 그때 그가 들이닥친 것이고 얼마 뒤 나를 조용히 불러내서 앞으로 근무시간에 누워 있다가는 그에 따른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반 협박을 했다. 나는 새벽에 구급을 타고 오침을 못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둘러댔으나 안하무인이었다.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최고참이 되던 첫 날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내무반장으로서 나는 언제나 나의 직속상관이라는 그 사람을 상대할 때마다 마음에 커다란 짐덩이 하나를 안고 대해야 했다.

그 뒤 반 년 간 몇 차례 비슷한 실수가 이어졌다.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나를 전 선임들과 비교했고,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을 다른 소방서와 비교했고, 심지어는 같이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과도 비교했다. 너에게는 도대체 정을 못 붙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사소한 실수로 나의 인간성을 바닥으로 내려 앉았고 그의 앞에서 내가 안게될 짐덩어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그 무렵부터 나에게는 그를 단지 바라보는 일, 그와 마주치는 일조차도 큰 부담이 되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나를 지적할 지, 그 일을 가지고 또 어떤 비교를 할 지, 얼마만큼이나 나의 인격을 다시 깎아내릴 지를 걱정했다. 그런 부담을 떠안고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난 그에게 도저히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없었고, 이는 다시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가 이런 나에게 정을 붙이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1월의 첫번째 월요일에 과장이 우리의 내무실에 딴지를 걸었고 자연히 불똥은 나의 직속상관인 그에게까지 튀었다. 그 불씨가 다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화마가 되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 그 일로 그와 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사무실 복도 한 가운데서 온갖 구박을 들었고 우리의 생활은 조여 들었다. 그를 대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생겼던 짐덩어리는 이제 아예 내 마음속에 눌러 붙어서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을 갉아 먹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일, 나도 더이상의 노력 없이 정을 떼 버리리라 다짐했다. 난 단지 더 이상의 구박을 먹지 않을 만큼만 행동했다. 그의 눈 앞에서만 그와 상대해야할 일에 대해서만 충실했다. 그것은 분명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니었다. 일하는 로보트 사이의 관계였다. 기계적으로 일을 올리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기계적으로 실수를 지적한다. 지적 받은 것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더이상 없었고, 나는 다시 기계적으로 실수를 정정하면 그 뿐이었다.

그 무렵 막내가 다시 팔의 통증을 호소했고 다시 업무는 나와 후임 둘이서 처리해야 했다.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반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렇게 생활하면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나와 후임은 더이상 그렇게는 못살겠다고 그에게 업무 조정을 요청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힘들다’고, 그에게 인간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나의 말을 아마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받아 들였고, 나의 업무에 관한 사항을 그의 수첩에 적었다. 충분히 고려해 볼 테니 조금만 고생하라고, 그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지옥 같았던 새해 첫째주, 둘째주가 그렇게 지나고 그와 나의 관계도 적어도 봄에 얼음을 뚫고 나오는 새싹만큼은 나아졌다.  그 새싹이 더욱 자랄 지는…

그러던 중 오늘 다시 정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구박이 아니었다. 인간적으로 나에 대한 일종이 실망감을 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몰랐다. 이제 나에게도 그를 대할 때마다 가슴속을 압박하던 짐 같은 건 없다. 그래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실 나는 끊임없이 되뇌여 왔다. 내가 이 곳을 떠나면, 그를 다시 보게 될 일은 아마도 없다. 그런 그에게 다시 연락을 하게될까? 나의 대답은 언제나 부정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답을 내린 적은 없었다. 자신 있게 “다시는 연락 안할 거야”라고 다짐해 본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그가 나에게 정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사람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정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비록 그는 ‘나’라는 인력을 상시 자신의 업무에 동원했고,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고 나의 생활 전반을 볼모로 나를 압박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를 절대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것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는 (항상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정을 주었다.”

아무리 그와 나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고는 해도 그나 나에게 준 일말의 정을 무시할 순 없다. 그건 아마도 그와 나 사이에 남은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고, 나에게 하등 득될 것 없는 인간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옥죄는 속박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 ─ 그러니까 분명 그는 로보트가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것인데 그런 그의 방식이 나에게는 전혀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또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그래서 “너에게는 정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이곳을 떠난 뒤에 그에게 연락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여전히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답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래, 그렇게 다시 그에게 연락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미래의 일이다.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매일 그를 마주해야 하는 나에게는 절대로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하는 미래의 일. 미래의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할 지, 하지 않을 지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 그것은 지금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정신과 시간의 방

시간이 그렇게 안간다는 말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는 일 없이 보내고 있다.

하루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각종..은 아니지만 여러 음악들으면서 곡 작업하고 영화보고. 일단 쓰던 곡은 후렴까지 다 쓰긴 했는데 어딘가 맘에 안들어서 다른 키로 새로 쓰고 있다. 체계적인 이론 없이 눈칫밥으로 곡 쓰려니까 쉽진 않다(연역적 방법이 아닌 귀납적 방법으로;;).

어쨋든 음악 많이 듣고 영화 많이 봐서 좋긴 한데.. 나태해지려고 한다.

아니, 이미 나태……하다.

근황

1. 주제에 곡 하나 쓰고 있다. 제목은 “Talk to Her”로 정했고 여인에 대한 얘기다. 어머니란 여인… 제목은 ‘모성’ 혹은 ‘여성성’에 대한 고찰을 담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서 따 왔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지하게 거창한 것 같지만 아주 쉬운 곡으로 쓰고 있다. 어차피 내 수준이 어려운 곡 쓸 정도는 아니니까 뭐; 지금 후렴 제외하고 1절 완성. 2절이야 어차피 1절 반복이니까 남은 건 후렴구랑 1절 2절 끝나고 마지막 부분 정도.

가사도 딱 한 소절 정도 완성.

기타 솔로도 만들어 봐야 되고 드럼도 넣어 봐야 되고.. 이왕이면 피아노도 넣어 볼까 하는데 드럼 비트 넣는 건 작업이 익숙치 않아서 잘 될까 모르겠다. 안되면 뭐 개민호가.. ㅎㅎ

2. 그러니까 곡 쓰고 기타 치고 음악 듣는 게 업무를 제외하면 하루 일과의 거의 전부다. 책은 틈틈이 읽는다고 읽지만 예전만큼 많이 안읽고; 오늘도 한 30페이지 읽은 것 같다. 곡 쓰는 데 미쳐 있으니까 책이 눈에 안들어오네.

3. 그래서 요즘 듣는 음악은 미국 인디밴드 Spoon의 곡. Kings of Convenience 내한공연에 대비해서 얘네들 노래도 좀 들어 보고 새 앨범 나온 Vampire Weekend 앨범도 듣고.

4. Kings of Convenience 내한공연 예매완료했다. 오늘 12시에 티켓이 열렸는데 넋 놓고 있다가 1시 쯤에 예매했다. 이미 앞자리는 다 나갔고 사이드 쪽으로 비교적 무대에서 가까운 쪽으로 에매했다. 일단 두 자리 예매했고 같이갈 사람 못구하면 한 자리는 취소.

2009-1-25, 월

막내가 팔을 다친 지는 이제 거의 9개월 정도 됐다. 작년, 소방학교에서 훈련을 받다가 다친 것이 지금까지 오는 거니까..

막내가 처음 소방서에 왔을 때 양 쪽 팔꿈치에 상처가 있었다. 뻔한 상처였다. 분명 소방학교에서 얼차려를 받다가 생긴 상처이리라. 우리 때는 인대 늘어나고 그런 애도 있었으니까 그 정도 상처는 사실 약과였다.

그런데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염증이었다. 겨우 내 추측에불과하지만 상처도, 염증도 모두 팔꿈치로 엎드려서 버티게 하는 그 얼차려 때문에 생긴 것일 게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던 건, 소방학교의 분위기다. 아프면 감점되고 감점되면 소방서 배치받을 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반 협박을 한다. 또하나. 아파서 훈련 열외하면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게 처음 1, 2 주는 아파도 쉬쉬하는 분위기. 그러니까 염증으로 인해 오는 통증도 방치하고 있던 거다. 통증이 올 때 바로 치료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있다.

아무튼 막내는 그런 상태로 우리 소방서엘 왔는데 처음엔 아프다길래 들 것 들기 어려운 정도냐,고 물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 일단 참을만 하다고 해서 그 때는 그냥 그렇게 못하겠으면 말하라고만 했었다. 이게 아마 작년 6월, 7월 쯤이고 그 다음 달에 아마 통증이 심해서 구급출동은 못하겠다고 얘기를 했던 거 같다. 그때부터 나와 내 후임의 3개월에 걸친 고난(?)의 행렬은 시작된 것이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신참 녀석이 아프다고 일을 안하니까 주변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비실비실한 놈 왔다고.. 아무튼 그렇게 직원들 불만은 조금씩 쌓여 갔다.

그러다가 11월에.

팔 아프다던 막내는 체력단련실에서 버젓이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었고 나는 다시 구급을 태웠다. 그렇게 일단 나와 후임의 고난의 행렬은 잠시 일단락 되었다.

3개월 만에 다시 출동을 타는 막내가 일을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직원들로부터 막내가 뭘 어떻게 하더라, 는 소리들이 나오고 그때마다 나는 주의시키겠다고 변명했다. 그렇게 다시 업무에 복귀해서도 막내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은 또 쌓여갔다. 이제 우리도 고난의 행렬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업무 조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직원들의 일이 더 많아지고, 그러면 모든 불만이 막내에게 폭발할 지도 모르겠다.

막내는 그렇게 한 달  반가량을 다시 업무에 임했는데, 1월이 되어서 다시 통증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3 주 동안 다시 나와 후임은 고난의 행렬에 몸 담게 되었다. 물론 직원들의 불만은 더욱 쌓였다. 막내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우리한테는 얘기가 들려 온다.

아픈 게 죄는 아니다만.. 어쨋든 이 바닥이 그렇다. 아픈 게 죄가 돼버린다. 군인이 비실비실하면 죄라고.. 뭐 대충은 그런 느낌이다. 막내가 서울대 출신이라서 여기에다가 편견이 덧씌워졌다. 공부만 한 놈이라는.. 처음엔 그냥 불만이다가 이렇게 인간적으로 깎아내리는 데까지 간다. ‘걔는 뭐 책만 보냐’, ‘걔 운동 좀 시켜라’, ‘걔는 도대체 뭐하고 노냐’ 등등.

이런 걸 막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뭐 나는 모른다. 아무튼 나랑 후임은 곧 제대하고 그러면 막내 혼자 남는데.. 일 년 동안 직원들 뇌리에 아로 새겨진 ‘비실비실한 서울대생’ 이미지는 쉽사리 없어질 거 같지 않다.

1년 동안 고작 2~3개월만 출동 탄 걸로 퉁치면 되려나? 엄연히 말해서 막내가 팔 다친 덕에 군생활 참 편하게 하긴 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견뎌내는 건 좀 곤욕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몸은 엄청 편하게 지냈고 개인 시간도 무지하게 많았다.

아무튼 뭐.. 막내 일은 내 군생활을 통틀어 가장 골치 아픈 일이었다. 막내 일 땜빵 하느라 힘들기도 했고 윗사람들 불만 들어주랴, 막내 아픈 거 위로하랴.. 중간에 끼어서 곤란하기도 했고.. 나는 이 짓도 이제 3개월도 안남았지만 막내는 앞으로도 1년 3개월.. 어떻게 되겠지 뭐.

2010-1-24, 일

어제는 최악의 수색작업을 펼쳤다.

실종된 사람은 50대 여성, 정신질환자. 6년 전에 이사를 온 뒤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주변 지리를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더군다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니). 휴대폰도 없고 그래서 위치추적도 불가능하고 무작정 주변을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3시쯤 집을 나갔다고 하는데 신고 들어온 건 6시 30분 경.

지리를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냥 무작정 걸어 나갔을 거라 생각하고 우선은 차로 수색. 3시간 걸어 갔으면 꽤 멀리 갔겠구나 싶었다. 물론 못 찾았고 다시 작전회의를 한 결과 추워서 멀리 가지 못하고 어디 구석에 웅크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그래서 랜턴 하나씩 들고 도보로 수색하기 시작. 없다.

상황이 안 좋은 게 실종된 요구조자가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사람을 보면 숨는다고.. 그러다가 6시 무렵에 한 여자가 집 앞에 웅크리고 있는 걸 봤다는 사람이 등장! 그 집으로 당장 달려가서 집 안을 샅샅히 뒤졌으나 역시 없다.

졸라 춥고.. 배고프고.. 동네는 시골이라 자꾸 살인의 추억 생각나서 으스스하기도 하고. 에피소드 몇 개.

1. 시골 동네라 확실히 이웃 사이의 정이 돈독하다. 사람 하나 없어졌다니까 연신 마을 이장이 방송을 하고 마을 주민 전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랜턴 하나씩 들고 나와서 발 벗고 수색작업에 나선다. 거기다가 심지어는 수고한다고 마을회관에서 우리에게 떡국 한그릇씩을 대접하기까지.

2. 워낙 시골이라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집도 많다. 소위 말하는 흉가가 좀 있었는데 무섭지만 그런 데도 어쨋든 수색은 다 해야 하니까. 그 중 한 집에 들어가서 수색을 하는데 한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우리는 사람 사는 집 아닌 줄 알고, 할머니께 “여기 사람 안살죠?”라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사람 사는 집이 이러우..”라고 말씀하시고는 그 집으로 들어가셨다.

3. 날씨가 추우면 소방차(펌프차) 안의 물이 얼어 버린다. 그래서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차고에 밤새도록 난방 장치를 가동하는데 수색 작업을 할 때는 차를 영락 없이 바깥에 대 놓을 수 밖에 없다. 펌프차 타는 직원들은 차 안의 물이 얼까 봐 계속 전전긍긍.

4. 그래서 결국 사라진 아줌마는 찾지 못했다. 원래 멀쩡하던 분이셨는데 6년 전에 주식으로 몇 억을 잃고는 그렇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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