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한 걸까? 이곳에서 나의 인간관계란 것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의 상황으로 와 버렸다.
2. 아마 첫 단추부터가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제대로 내무반장을 하게된 날, 그러니까 내 마지막 선임이 제대하던 날 바로 그날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에 나는 출동을 나가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고 아침에는 전역하는 선임 배웅하느라 한 시도 쉬지 못했다. 그렇게 점심까지 같이 먹고 선임을 떠나보내니까 얼핏 2~3시가 되었던 것 같다. 난 전날밤에 못잔 잠을 좀 자려고 내무실에 누웠다. 그때 바로 그가 들어왔고 나는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근무시간에 누워있다고.
사실 그 전에 그사람이 어디 청소좀 해 놓으라고 했던 차였다. 그런데 내 후임은 출동을 나간 상태였고 청소를 할 인원은 나 혼자였다. 혼자서는 할 엄두가 나지 않아 후임이 출동을 갔다 오면 같이 하려고 했다. 더군다나 난 한 숨도 자지 못해서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잠깐 눈 좀 붙이려고 누웠다. 딱 그때 그가 들이닥친 것이고 얼마 뒤 나를 조용히 불러내서 앞으로 근무시간에 누워 있다가는 그에 따른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반 협박을 했다. 나는 새벽에 구급을 타고 오침을 못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둘러댔으나 안하무인이었다.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최고참이 되던 첫 날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내무반장으로서 나는 언제나 나의 직속상관이라는 그 사람을 상대할 때마다 마음에 커다란 짐덩이 하나를 안고 대해야 했다.
그 뒤 반 년 간 몇 차례 비슷한 실수가 이어졌다.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나를 전 선임들과 비교했고,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을 다른 소방서와 비교했고, 심지어는 같이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과도 비교했다. 너에게는 도대체 정을 못 붙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사소한 실수로 나의 인간성을 바닥으로 내려 앉았고 그의 앞에서 내가 안게될 짐덩어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그 무렵부터 나에게는 그를 단지 바라보는 일, 그와 마주치는 일조차도 큰 부담이 되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나를 지적할 지, 그 일을 가지고 또 어떤 비교를 할 지, 얼마만큼이나 나의 인격을 다시 깎아내릴 지를 걱정했다. 그런 부담을 떠안고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난 그에게 도저히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없었고, 이는 다시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가 이런 나에게 정을 붙이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1월의 첫번째 월요일에 과장이 우리의 내무실에 딴지를 걸었고 자연히 불똥은 나의 직속상관인 그에게까지 튀었다. 그 불씨가 다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화마가 되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 그 일로 그와 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사무실 복도 한 가운데서 온갖 구박을 들었고 우리의 생활은 조여 들었다. 그를 대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 생겼던 짐덩어리는 이제 아예 내 마음속에 눌러 붙어서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을 갉아 먹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일, 나도 더이상의 노력 없이 정을 떼 버리리라 다짐했다. 난 단지 더 이상의 구박을 먹지 않을 만큼만 행동했다. 그의 눈 앞에서만 그와 상대해야할 일에 대해서만 충실했다. 그것은 분명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니었다. 일하는 로보트 사이의 관계였다. 기계적으로 일을 올리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기계적으로 실수를 지적한다. 지적 받은 것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더이상 없었고, 나는 다시 기계적으로 실수를 정정하면 그 뿐이었다.
그 무렵 막내가 다시 팔의 통증을 호소했고 다시 업무는 나와 후임 둘이서 처리해야 했다.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반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렇게 생활하면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나와 후임은 더이상 그렇게는 못살겠다고 그에게 업무 조정을 요청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힘들다’고, 그에게 인간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나의 말을 아마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받아 들였고, 나의 업무에 관한 사항을 그의 수첩에 적었다. 충분히 고려해 볼 테니 조금만 고생하라고, 그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지옥 같았던 새해 첫째주, 둘째주가 그렇게 지나고 그와 나의 관계도 적어도 봄에 얼음을 뚫고 나오는 새싹만큼은 나아졌다. 그 새싹이 더욱 자랄 지는…
그러던 중 오늘 다시 정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구박이 아니었다. 인간적으로 나에 대한 일종이 실망감을 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몰랐다. 이제 나에게도 그를 대할 때마다 가슴속을 압박하던 짐 같은 건 없다. 그래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실 나는 끊임없이 되뇌여 왔다. 내가 이 곳을 떠나면, 그를 다시 보게 될 일은 아마도 없다. 그런 그에게 다시 연락을 하게될까? 나의 대답은 언제나 부정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답을 내린 적은 없었다. 자신 있게 “다시는 연락 안할 거야”라고 다짐해 본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그가 나에게 정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사람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정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비록 그는 ‘나’라는 인력을 상시 자신의 업무에 동원했고,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고 나의 생활 전반을 볼모로 나를 압박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를 절대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것만큼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는 (항상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정을 주었다.”
아무리 그와 나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고는 해도 그나 나에게 준 일말의 정을 무시할 순 없다. 그건 아마도 그와 나 사이에 남은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고, 나에게 하등 득될 것 없는 인간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옥죄는 속박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 ─ 그러니까 분명 그는 로보트가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것인데 그런 그의 방식이 나에게는 전혀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또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그래서 “너에게는 정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이곳을 떠난 뒤에 그에게 연락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여전히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답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래, 그렇게 다시 그에게 연락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미래의 일이다.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매일 그를 마주해야 하는 나에게는 절대로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하는 미래의 일. 미래의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할 지, 하지 않을 지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 그것은 지금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다는 것이다.